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대외비: 정치판의 민낯 폭로극 (재개발, 공작, 배신)

by 뇌절랜드 2025. 4. 6.

재개발 : 돈과 권력이 뒤엉킨 땅의 전쟁

영화는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시작되며, '재개발'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단순한 도시 재생이 아닌, 정치적 음모와 자본의 결탁이 얽힌 거대한 프로젝트로 묘사되죠. 주인공 해웅은 시민 편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며, 순수한 정치 이상을 외치며 지지를 얻습니다. 그러나 이미 땅값은 치솟고, 전국에서 투기 자본이 몰려들어 부산은 투기의 격전지가 됩니다. 그 속에서 해웅이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삶터'는 점점 자본의 논리에 밀려납니다.

이 장면들은 도시 재개발이 단순히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 아파트를 짓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해웅은 정치 초심자로, 돈과 권력의 거대한 흐름에 무지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다. 특히 "탕을 팔지 말고 손에 꼭 쥐고 있어야 된다"는 대사는, 땅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구도는 곧 사회 불평등, 계층 고착화로도 이어지죠.

부산이라는 도시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의 욕망이 교차하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작용합니다. 재개발은 도시를 바꾸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관계도, 양심도, 도리도 바꿔놓습니다. 영화는 이 재개발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단지 건축적 변화가 아닌, 사람 사이의 권력 관계 변화까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공작 : 선거, 언론, 검찰이 얽힌 정계의 추악한 뒷거래

해웅이 맞서는 세력은 단순한 건설업자나 정치인만이 아닙니다. 선거를 좌우하려는 자금 세력, 이를 묵인하거나 조작하는 공무원, 정치적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언론과 검찰까지 모두 얽힌 복잡한 ‘공작 정치’가 펼쳐집니다. 정사장과 순태, 그리고 각종 조직폭력배까지 총출동하며, 해웅의 순수한 의지는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시험대에 오릅니다.

특히 선거에서 불법으로 투표지를 조작하고, 돈봉투를 살포하며 여론을 왜곡하는 장면들은 마치 실제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치는 돈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후보가 떨어지면 다 끝이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선거는 단지 한 개인의 도전이 아닌 거대한 비즈니스 프로젝트처럼 취급됩니다. 기자, 검찰, 언론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기사를 묻거나 바꿔치기하는 모습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깊은 회의를 낳게 하죠.

해웅이 결국 타락의 길을 걷는 것도 이러한 공작 정치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이상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정치의 세계. 해웅은 점점 그 속으로 스며들며, "진짜 복수는 둘 중 하나다. 완전히 짓밟거나, 같은 편이 되거나"라는 명언처럼, 선택의 기로에서 점차 비정한 정치인이 되어갑니다. 그 변화의 과정이 영화의 중요한 서사적 축이 됩니다.

배신 : 동지에서 적으로, 끝없는 추락의 드라마

영화 후반부에서 특히 인상 깊은 키워드는 ‘배신’입니다. 동료였던 필도, 조직폭력배, 언론, 심지어 해웅 자신까지 서로를 배신하며 끝없는 음모와 복수의 나락으로 빠져듭니다. 해웅은 정치에 입문할 때만 해도 순수한 이상주의자였지만, 배신과 협잡 속에서 결국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경지까지 이르게 됩니다.

필도의 배신은 가장 뼈아픈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는 처음엔 해웅의 친구였지만, 점점 해웅의 방식에 의문을 갖고 반기를 듭니다. 하지만 그 역시 결국 조직의 배신을 당하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인간 관계의 한계입니다. 권력과 돈 앞에서 의리는 쉽게 무너지고, 친구는 적이 되며, 동지는 이용당하는 소모품이 됩니다.

배신의 연쇄는 결국 해웅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공작에 휘말리고, 선거에 패배하고, 검찰의 수사망에 갇히며, 그는 자신이 믿었던 모든 이들에게서 외면당합니다. 특히 선거에서 진 후, “33% 잘 싸웠다? 씨발 싸우다 지면 죽는 거지”라는 대사는 그의 좌절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 한마디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절망을 압축한 명대사로, 해웅의 추락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정치판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초심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마저 삼키는지를 절묘하게 묘사합니다. 배신은 단지 스토리의 장치가 아니라,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적 테마이며,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